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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절감 규제자 vs 질향상 전문가, 심평원 선택은?

재정절감 규제자 vs 질향상 전문가, 심평원 선택은?

  • 고신정 기자 ksj8855@doctorsnews.co.kr
  • 승인 2012.07.20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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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립 12주년 맞은 평가원, 전문가 평가·기대 엇갈려
"진정한 전문기관으로 거듭나려면 '규제자' 틀 먼저 깨야"

당신이 생각하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어떤 모습인가?

현재 병의원을 운영중이라면 의료인이라면 급여비 삭감 등 규제를 먼저 떠올릴테고, 국민이라면 아마도 항생제 처방률 등 의료기관 평가 기관쯤으로 생각하지 않을까 싶다.

심사를 통한 적정 의료비 지급와 평가를 통해 의료 질 향상, 양자는 심평원이 가진 가장 중요한 두 개의 기능이지만 심평원을 바라보는 의료인과 국민의 엇갈린 시선처럼 맞물리지 못한채 돌아가고 있다.

창립 12돌을 맞은 심평원에 대한 평가와 기대가 엇갈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창립 12주년을 맞아, 20일 코엑스에서 '의료심사평가의 현재와 미래'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열었다. ⓒ의협신문 김선경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20일 코엑스에서 '의료심사평가의 현재와 미래'라는 주제로 미래전략 세미나를 열었다.

심평원이 남긴 12년의 족적에 대한 전문가들의 평가는 크게 엇갈렸다.

이날 발제자로 나선 김진현 서울대 교수는 "심평원이 진료비 심사와 의료의 질 평가업무를 통해 적정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국민건강을 증진하는데 크게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전산심사의 확대와 심사 효율화로 심사직원 1인당 생산성이 2000년 36만 1000건에서 2011년 77만 3000건으로 2배 이상 늘어났으며, 진료 적정성 평가로 의료기관들의 행태개선을 이끌어 내는 한편 소비자들의 알 권리를 강화하는데 기여했다는 것.

다만 김 교수는 심사의 신뢰도와 수용성이 저하되고 평가결과에 대한 기관단위의 종합화, 의료의 질과 진료비용의 연계가 미약하다는 점은 한계라고 지적했다.

의료계는 심사의 객관성·독립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이재호 대한의사협회 의무이사는 "심평원이 그간 건강보험체제의 한 축으로 그 역할을 묵묵히 수행해왔다는 점은 인정한다"면서도 "다만 심사기준의 객관성과 타당성, 적용과 관련해서는 적지 않은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 이사는 "현재의 심사기준은 전문의학적 기준과 임상적 판단의 반영이 미흡하고, 환자의 특수성과 환자의 개별성을 불인정하고 있어 진료의 규격화와 하향 평준화를 유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심사기준 적용에 있어서도 "심사기준에서 벗어나면 진료비 삭감은 물론 실사와 과징금, 업무정지 등의 행정처분으로 제재하고 있다"면서 "한정된 보험재정 상황에서 의료서비스의 양적인 측면을 규제하기 위해 초과의료에 대한 진료비 삭감은 불가피하다고 하나 이를 마치 범죄행위인양 실사와 행정처분까지 하는 것은 부적절한 일"이라고 밝혔다.

병원계에서는 줄세우기식 평가에 대한 불만이 쏟아졌다.

허윤정 아주의대 교수는 "각종 평가가 쏟아지다보니 요양기관 입장에서는 1년 내내 시험을 보다가 끝나는 기분"이라면서 "평가가 신뢰성을 갖기 위해서는 평가의 당사자의 평가자에 대한 신뢰가 기본이 되어야 하나 심평원이 그런 권위를 갖고 있느냐에 대해서는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지영건 차의과학대학 교수 또한 "심평원의 역할이 등수를 매기는 기관이고, 급여적정성 평가라는 것이 의료기관에 등수를 매기기 위한 것이냐"면서 "평가의 본래 취지는 현재 자신의 위치를 돌아보게 하는데 있는 것으로 현재와 같은 평가, 평가결과 공개는 부적절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날 제안된 기관단위 종합평가로의 확대에 대해서도 "종합평가를 진행할 경우 맹장이나 편도수술까지 대형병원이 잘하는 것처럼 호도될 수 있다"면서 "국민의 인식수준과 평가체계가 성숙되지 않은 상황에서 종합평가를 도입하겠다는 데는 동의할 수 없다"고 밝혔다.

정보 독점에 대한 논란도 이어졌다.

허윤정 교수는 "심평원 가지고 있는 정보를 누구나 볼 수 없는 것도 문제"라면서 "심평원은 정보를 관리하고 운영하는 기관일 뿐 정보의 주인은 아니다. 이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갈원일 한국제약협회 전무이사 또한 "심평원은 가장 많은 건강보험 정보데이터를 가지고 있다"면서 "심평원이 축적한 정보와 지식을 보건으료서비스 공급자 및 보건의료 관련 학자들이 충분히 공유하고 활용해 나갈 때 건강보험과 의료서비스 산업이 조화롭게 발전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각계 전문가들은 심평원이 진정한 심사평가전문기관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규제자로서의 틀을 먼저 깨야 한다고 주문했다. 토론자로 나선 이재호 의협 의무이사. ⓒ의협신문 김선경

이날 각계 전문가들은 심평원이 진정한 심사평가전문기관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규제자로서의 틀을 먼저 깨뜨려야 한다고 주문했다. 재정절감에 초점을 둔 규제자 이기보다는 의료의 질과 효율성 향상을 위한 지원자이자 전문가로 그 역할을 재정립해 나가야 한다는 얘기다.

발제자로 나선 김윤 서울의대 교수는 "심평원의 새로운 몫은 양질·고효율의 의료체계 구축이어야 한다"면서 "규제적인 접근방식으로는 이 같은 목표를 달성하기 어렵다. 의료는 매우 전문적이고 복잡하기 때문에 의료기관이 자율적으로 질 향상을 위해 노력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목표 달성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이재호 의무이사 또한 "심사는 양적 측면에서의 제한이고, 평가는 질적 측면에서의 관리와 향상을 목표로 하므로 필연적으로 비용증가를 수반한다"면서 "모든 초점이 건강보험 재정에 맞춰지다보니 심평원 입장에서는 양자 사이에서 갈등하게 되고 각각의 목적과 운영상의 괴리가 발생할 수 밖에 없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 이사는 "건강보험 지속가능성의 측면에서도 보더라도 무조건적인 재정절감이 아니라 한정된 재원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활용해야 하느냐는 것이 심평원과 우리 모두의 숙제"라면서 "심평원이 설립취지와 같이 정부나 어떠한 기관에도 귀속되거나 영향을 받지 않고 고유의 전문성과 독립성을 최대한 살려나갈 때 진정한 전문기관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부도 이 같은 의견에 힘을 실었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보험정책과장은 "심평원 업무의 방향이나 운영은 미래지향적인 것이어야 한다"면서 "1등부터 줄세우기식의 평가는 권력을 지향하는 것이며, 국민에게 선택권을 주기보다는 오히려 편향을 부추기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소비자의 선택, 시장기능의 활용은 매우 보충적인 역할"이라면서 "이보다는 수십억건의 진료비 명세서를 심사하면서 발견되는 불합리한 것들, 잘못된 급여기준 등을 개선해 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휠씬 중요한 심평원의 역할 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 과장은 이에 덧붙여 심평원 직원들에 "전문가로서 좀 더 자신감을 가져달라"고 밝히기도 했다.

그는 논란이 되고 있는 액자법을 예로 들면서 "중요한 것은 액자의 크기, 글자의 크기가 아니지 않느냐"면서 "법령의 취지를 살리도록 해야 하는데 현장에서 단속하는데 초점을 두면 굉장히 기계적이 될 수 있다"고 언급했다.

그는 "마찬가지로, 심평원은 굉장히 원칙주의적인 특성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는 장점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자신감이 없어 규정에 매달리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면서 "현장 적용에 대한 문제는 전문가적으로 재량껏 해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오히려 득보다 실이 많을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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